심혜진의 사소한 과학이야기 219. 보이지 않는 꿈
편의지원센터
2021-02-03
5604
아무리 계획적이지 않은 사람도 새해가 되면 몇 가지 다짐을 하게 된다. 최근 몇 년 동안 빠지지 않는 것이 ‘핸드폰 덜 보기’이다. 핸드폰에 빠져 있다 보면 할 일을 제때 마치지 못하기도 하고, 책도 덜 읽게 된다. 하지만 다짐과는 정반대로 핸드폰 시청 시간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.
최고의 시간 도둑은 단연코 유튜브다. 먹방을 즐겨 보고, 동물과 인간 사이에 얽힌 찡하고 아름다운 사연에 종종 마음을 빼앗긴다. 내 관심사에 따라 자동 추천된 영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있다.
글은 필요한 부분만 골라 읽을 수 있지만, 영상은 어디에 어떤 장면이 나올지 알 수가 없으니 웬만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보게 된다. 그 안에 있을 땐 행복하지만 빠져나오면 왠지 허무한 유튜브의 세계. 오늘도 나는 그곳에서 허우적댄다.
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듯, 내겐 오직 유희의 세계인 것만 같은 유튜브에서도 쾌락 이상의 값진 것을 마주치는 순간이 있다. 며칠 전 바로 그 일을 경험했다.
유튜버 한솔 씨의 ‘시각장애인은 꿈을 어떻게 꿀까?’라는 제목의 동영상 갈무리 사진.
제목의 영상이 추천 영상에 올라와 있었다.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어떤 이유로 내게 이 영상을 안내했는지 알 수 없으나, 제목을 읽는 순간 뭔가 특별한 것이 담겨 있으리란 기대감이 솟았다.
영상에선 두 성인 남성이 소주를 마시며 유쾌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. 열세 살에 시력을 잃은 28년 차 시각장애인 안승준 씨와 열여덟 살 때부터 11년째 시각장애인으로 살고 있는 유튜버 한솔 씨. 이들이 꾸는 꿈 이야기는 비장애인인 나에겐 상상으로만 짐작할 수 있는 미지의 세계였다.
축구와 오락을 좋아하던 승준 씨는 시력을 잃은 직후 매일 밤 모든 것이 생생히 잘 보이는 꿈을 꿨다고 한다. 꿈을 꾸고 싶어서 잠을 많이 자기도 했다. 10년쯤 후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반반 섞이다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더 많은 것이 보이지 않게 됐다. 그리고 익숙해졌다. 한솔 씨도 비슷했다. 시력을 잃은 이후 새로 만난 이들은 꿈속에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. 선천적 시각장애인의 경우, 꿈을 라디오 듣는 것처럼 꾼다고 한다.
이들의 수다에 나는 폭 빠져들었다. ‘보이지 않는 꿈’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다. 한솔 씨의 이야기가 더 듣고 싶어 다른 영상들도 눌러 봤다.(역시 유튜브는 빠져 나오기가 힘들다) 눈 쌓인 길을 걷는 한솔 씨. 점자블록이 눈에 뒤덮여 지팡이와 발의 감각으로 길을 찾을 수 없었고, 횡단보도에선 도로와 차도의 경계를 파악할 수 없어 무척 위험해 보였다.
자칫 빙판에서 넘어질 때, 비장애인은 안전한 곳으로 쓰러지거나 땅을 짚는 등 부상을 막을 방법이 있지만, 이들은 그마저 불가능했다. 얼굴 피부 등 안면 감각으로 방향과 소리 등을 인지하기 때문에 아무리 추워도 털모자를 쓰거나 귀마개를 할 수 없다는 건 처음 알았다.
한솔 씨의 유튜브 채널 ‘원샷한솔’은 시각장애인으로는 우리나라 최초로 10만 구독자를 넘겼다. 처음으로 점자로 ‘장’자를 읽고 큰 성취감을 느꼈던 일, 편의점에서 찬 기운으로 냉장고를 찾고 먹고 싶은 과자와 음료를 ‘어렵게’ 고르는 모습 등 소소한 일상을 보여준다.
이후부터 버스를 타거나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을 때면 이따금 한솔 씨를 생각했다. 비장애인 위주로 설계된 이 모든 것들은 시각장애인에겐 하나하나 풀기 어려운 숙제일 터. 그는 이 난제를 어떻게 해결할까. 모두에게 편하고 안전하게 다시 만들 순 없을까. 정말 한솔 씨가 내 가까운 친구라도 된 듯했다.
그제야 알았다. 내겐 시각장애인 친구가 한 명도 없었다는 걸. 휠체어를 탄 친구도, 수화를 하는 친구도 없다. 인구 열 명 중 한 명은 장애인이라는데, 그들은 모두 어디에 있을까.
이제는 내 곁에 한솔 씨가 있다. 아직은 추천 영상에 고양이와 백종원이 자주 등장하지만 한솔 씨의 영상을 계속 보다 보면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나를 내가 모르던 세상으로 연결해줄 것이다. 아무래도 당분간은 유튜브 시청 시간이 줄지 않을 것 같다.
출처 : 인천투데이
해당 기사링크 : http://www.incheontoday.com/news/articleView.html?idxno=205883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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